서이초 1년, 변화를 꿈꿨지만 변한 건 없다
창문여자고등학교 교사 김성일
지금 우리 교직 사회에는 ‘격화소양’(隔靴搔癢)라는 사자성어가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신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다’라는 뜻으로, 사태의 본질에는 다다르지 못한 채 단지 외양에만 골몰해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관료들의 무지몽매를 비꼬는 말이다. 지난 1년여 동안 ‘교권을 살려야 교육이 산다’라는 큰 뜻에는 일치했지만, 그 방향과 해법이 사태를 비켜서게 만들고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지적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선생님의 안타까운 희생을 방관할 수 없었던 수십만의 선생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대하여 외쳤다. 교권과 인권은 같은 것이라고, 교사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선생님들이 한뜻으로 움직이자 사회가 마음을 열었으며 교육당국은 이에 응답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음에도 교육현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과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결석한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가정을 방문한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하기까지 한다. 현장체험학습에 나간 교사가 학생 수십 명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관리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면 법정에 세우기 바쁘다. 이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교감 선생님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며 폭력까지 휘두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교원을 상대로 한 학생들의 돌발적인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 사건에는 두 가지 양상이 추가된다. 폭력에 여지없이 무너진 개인의 존엄과 별다른 조처를 할 수 없었던 교원으로서의 자괴감의 문제가 그것이다. 더욱이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 그 파괴력은 막중했다. 교감 선생님조차 이러한데 일반 교사들은 어느 정도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물론 서이초를 시작으로 한 교권 확립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호응하여 교권보호 5법이 제정되었고, 교권보호위원회 이관이나 비본질적 행정업무 경감을 위한 방안 발표 등 여러 방면에서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비본질적이고 과도한 행정업무, 교육공무직과의 갈등 심화, 공무원 연금 개편 논란까지 겹치면서 교심 이반 현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오죽했으면 교사라는 성직을 ‘극한 직업’으로 비하하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한국교총의 설문조사에서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택하겠다’는 응답은 2할이 채 안 됐다(19.7%). 역대 최저이자 첫 10%대 추락이다. 서이초 사건 초기에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악성 민원을 자제하는 분위기는 지금 와서는 대부분 잊혀지고, 기껏 마련된 제도적 보완은 아직 갈 길이 먼 상태이다. 원래 조심하던 학생과 학부모만 더 조심하게 되었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대처법은 여전히 부재한 것이다. 추후 입법 활동과 모니터링을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교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이다.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범, 윤리, 인간관계 등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교사의 역할은 학교 내에서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 일부 학부모들은 교사를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로 간주하며, 교사의 전문성과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존중받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지속적인 교육의 질 향상과 올바른 인성을 함양한 인재 양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교사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학생 지도와 교육부터 시작해서, 사생활 하나까지도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인격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도록 요구해왔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학생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며 매도했다. 그리고 교사들은 교육자니까 라는 명목 아래 모든 것을 감내했다. 그러나 교사는 초인이 아니다. 학부모의 비난에 우울해하고,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 고심하는 평범한 개인이다. 이런 교사에게 성인군자와 같은 덕목을 기대한다면 적어도 우리 사회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강조하거니와, 교권존중 인식 변화를 위한 범 정부차원의 세밀한 대책이 동반되어야 하며 교권 5법에 대한 제도적 안착을 위한 노력을 통해 현장실감 정책이 당장 병행되어야 한다. 새롭게 시작한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아동복지법’ 개정안과 학교안전법 개정안 등 교직사회를 위한 다양한 대책과 제도가 빠른 시일 내에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정부, 국회, 사회가 함께 더욱 더 노력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에듀프레스 기사: 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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